많은 천주교에 대해 묵인하는 이러한 정조의 비교적 너그러운 정책으로 천주교의 교세가 점점 커져 갔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죽고 뒤를 이어 아직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임금이 나이가 어려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자,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약용을 모함하던
2. 정약용의 업적
1) 경세유표(經世遺表)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 토지제도 · 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책이다. 44권 15책으로 되어있으며 필사본(필사연기 미상)이다. 원제명은《방례초본 邦禮草本》이며, 1817년(순
목민심서를 완성하였으며 『흠흠신서』, 『아언각비』 등의 저작을 내놓았다. 또한 회갑을 맞이해서는 자찬 묘지명을 지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기도 하였으며, 북한강을 유람하여 여유있는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신작, 김매순, 홍석주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정약용은 생애를 통해 위기에 처한 조선 왕조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그 현실 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선진유학을 비롯한 여러 사상에 대한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 분야를 망라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점에서 학
목민심서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기대감까지 무너뜨렸다 함은 이 책이 그 당시의 지방 향리, 군졸들의 비리는 물론 노비, 시동들의 비리와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까지 너무도 상세하게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조선시대’라고 하면 상하 관계가 확실하여 자신 보다 신분이 높은
있어서의 군자-성자-목자는 본시 교사(敎師)인 것이다.라 했듯이 교사상을 목민심서에서 나타난 목자상과 정약용의 사상을 통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우리나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사상가 및 실천가 중 1명을 선정하여 그의 생애와 교육사상의 특징을 설명해 보겠다.
2.1. 인성론
근대적인 자율적 인간관의 시초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선과 악을 행할 수 없다면 버려진 물건과 같다. 사람이 어찌 욕심이 없겠는가?”
“하늘은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권형(權衡)을 부여하여 인간이 선을 행하려고 하면 선을, 악을 행하려고 하면 악을 따르게 하였으니,
저작목적은 “현행의 법 테두리 안에서라도 우리 백성들을 살려내보자”(因今之法而牧吾民也)라고 하여 법과 제도를 고치고 바꾸지 못한다면 공직자들이 마음과 몸을 제대로 수양하여 청렴한 생활을 하면 세상이 바르게 되고 백성들이 숨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즉, 실제 행정에서 백성을 위하는 정
목민심서」에는 그의 풍부한 경험과 지성에 바탕을 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통치관이 한껏 녹아 있다. 더 나아가,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정약용 ‘민본 사상’의 적용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매우 크다.
물론 유학은 본래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근대
정약용의 문학론에 대한 역사적 의의 등이 분명하게 내려지지 않았다. 이에 정약용의 문학관을 그의 기록과 성리학자들의 문학관 비교를 통해 면밀히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다산의 문학관은 ‘詩言志’, ‘文以載道’의 명제로 집약될 수 있다.
글이란 道를 싣는 것이며, 시는 뜻(志)을 말하는 것